무명의 40대 회사원이 일본에 노벨 화학상 3년패의 위업을 안겨줬다.
지난 9일 저녁 일본 시마즈(島津)제작소의 주임연구원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43)가 올해 노벨 화학상 공동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에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환호와 함께 고개를 갸우뚱했다.
2000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시라카와 히데키(白川英樹)쓰쿠바대 명예교수도 "처음 듣는 이름"이라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정작 놀란 건 다나카 자신이었다.그는 몰려온 기자들에게 "노벨재단이 전화로 '축하한다'며 수상자로 결정됐다고 알려왔을 때 '스웨덴에 비슷한 이름의 상이 또 있나 보다'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아 폭소를 자아냈다.
중견기업의 평범한 연구원에서 일약 세계 화학계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다나카는 일본 최초의 학사 출신 노벨상 수상자라는 점에서 일본 열도를 더욱 뜨겁게 했다.
도호쿠(東北)대 전기공학과 78학번인 그는 학창시절 성실하다는 평은 받았지만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한해를 유급해 1983년 졸업했다.
졸업 당시 소니 입사를 희망했지만 면접에서 탈락해 시마즈 제작연구소에 입사했다. 전공과 달리 생화학 계열인 분석계측사업부 소속 연구원이 됐다.
그러다 87년 '잘못된 실험'으로 노벨상 수상을 가져온 '단백질 구조해석 방법'을 발견하게 된다. 9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잘못된 것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발명을 했다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이라고 쓴웃음을 짓고,발견 과정을 밝혔다.
단백질의 질량분석에 필요한 이런저런 실험을 하던 중 실수로 한 용액에 잘못된 용액을 섞었더니 종래와 전혀 다른 획기적인 방법이 찾아졌다는 것이다.
그 결과 단백질 등의 생체 고분자를 간단하게 분석할 수 있게 돼 신약 개발과 암 조기진단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의 노벨상 수상은 결코 '운'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얘기다. 그에게는 연구가 생활의 전부로 돼 있다.
직장 동료는 "외부 세계와 손을 끊고 하나의 세계에 몰두하는 성격이 수상의 배경이 됐다"고 말했다. 그의 입사 동기들은 과장이나 계장이지만 그는 연구에 몰두하기 위해 승진시험을 스스로 거부, 말단에서 세번째인 주임에 불과하다.
"연구는 꾸준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 다나카는 기자회견 중 걸려온 전화를 받고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누고 끊은 뒤 "죄송합니다.아내였습니다"라고 말해 일본 아줌마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한편 지난 8일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고시바 마사토시(小紫昌俊.76)도쿄대 명예교수는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대학을 꼴찌로 졸업한 사람"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다음날 그는 우(憂)는 2개밖에 없고 주로 양(良)과 가(可)로 가득찬 도쿄대 이학부 물리학과 시절의 성적표를 공개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dayyoung@joongang.co.kr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