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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한설원(2005-05-01 15:31:42, Hit : 732, Vote : 109
 고요한 유키시로의 평원 2부 1편

느껴진다. 그가...
보이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작지만 확실하게 내 마음에 침범한다.

... 신사크.

너무 깊이 숨을 들이 쉬었는지 손끝이 저려온다. 가슴이 저려온다.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드디어, 드디어...

만날 수 있어.

"얘야, 갑자기 왜 그러는거니? 어디 불편한 게냐?"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과 마주쳤다. 지금의 나는 그녀의 딸이다.
"아니에요. 그냥 불꽃놀이가 예뻐서."
하지만 그런건 지금은 아무 상관없어. 부모 자식간의 세속의 관계따위.
"그럴만도 하지. 교토 기온 마쯔리(祗園祭)의 불꽃놀이는 전국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하단다. 좀더 가까히 가서 볼까?"
"아뇨... 여기서...여기면 되요, 그냥 잠시만."
사실 불꽃놀이같은 건 아무 관심도 없었다. 조금씩 더 크게 느껴지는 신사크의 기(氣)를 쫓느라 건성으로 대답했을 뿐.

100년동안이나 그리워한 그의 향기.
결코, 절대로 내가 잊을리 없다.
1분도 채 되지않아 그와, 신사크와 눈이 마주쳤다.

밤의 검은 장막 속에서 홀로 빛나고 있는 그의 눈은 100년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속에서, 흘러가는 시간과 역사 속에 깊이 묻혀 있을지라도, 나는 그를 금새 알아볼 수 있다.

흐르려는 눈물을 가까스로 추스르고 다시 그를 응시했다.
그는 각성했을까. 나를 기억할까. 100년전의 우리를 기억할까.
두런두런 소곤거리는 어른들과 왁자찌껄 떠들며 뛰어다니는 내 또래의 아이들.
누가 보더라도 기분 좋아질, 그런 대가족을 이끌며 천천히 걸어오는 그는 이미 환갑을 넘긴 듯 이마에는 세월이 만들어낸 흔적도 생생했다.
하지만 상관없어.
그와 나 사이에 세월 같은건 상관 없어. 물론, 그도 그것을 알고 있다. 나를 기억한다면.

가만히 응시하는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갑자기 그가 무리에서 벗어나 나에게로 다가온다.
한걸음...한걸음...
비록 노쇠했지만, 여전히 확고한 걸음 걸이에서 예전의 그가 희미하게 투영된다.
그가 한걸음씩 땔 때마다 나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심장박동이 더욱 빨라진다.

"작은 아가씨,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그의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아...닮았다. 너무나도 닮았다.
늘 쓸쓸하게 나를 응시하던 눈빛과,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한쪽 입꼬리가 가볍게 치켜올라가는 특유의 미소와,
심지어 눈가의 주름 하나하나까지...
숨이 꽉 막혀온다.
시야가 흐릿해지고 다리에 힘이 풀려 도저히 서 있을수가 없다...
"아이, 왜 그러니? 아이! 얘야!"
"얘야, 왜 그러니? 아버님, 무슨 일이에요?"
"글쎄다, 아가야, 이 아이가 아까부터 날 지그시 바라보더니 갑자기 이러는구나."

그는 나를 모른다.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할아버지가 너무 무섭게 쳐다봐서 그런거 아니에요?"
"아, 아니다, 할애비는 아무것도 안했다."
그는 손자쯤 되어보이는 아이에게 당황한듯 항변하고는 다시 나를 바라본다.
"에그, 땀좀 봐라... 뭘 보았는지는 몰라도 많이 놀란 모양인데..."
그의 손이 나의 이마에 닿는다.
두근거리던 심장소리가 잦아들고, 호흡이 편해진다.
100년 과 마찬가지로, 그의 손길은 여전히 나의 마음을 진정시켜준다.

...신사크, 신사크.
아직 그는 각성하지 못했어.

"...이제, 괜챃아요, 어머니."
"아이, 정말 괜찮은 거냐? 어서 숙소로 돌아가서 쉬는것이 좋겠다."
"아뇨, 아뇨, 이제 정말 괜찮아 졌어요..."
"꼬마 아가씨, 어머니 말씀을 듣는것이 좋겠어. 돌아가서 쉬도록 해요."

...100년전과 마찬가지로 나는 거역할 수 없다.

"네에..."
"그래, 착한 아가씨구나."

"가족들과 좋은 시간 보내시는데 저의 얘가 괜히 폐를 끼쳤습니다..."
"뭘요, 신경쓰실것 없습니다."

나는 묻는다. 매우 당연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할아버지 이름은 뭐에요?"
"얘는! 할아버지 성함은 어떻게 되세요? 라고 해야지, 버릇없이."
그에게, 신사크에게 '할아버지' 라니 너무나도 어색하다.
...아직 100년전의 그가 아직도 손에 잡힐듯 선명하게 눈앞에서 떠오르는데.
"『사토 키무라』란다. 꼬마 아가씨의 이름은?"
『사토 키무라』...

나의 이름은...나의 이름은...
목이 잠긴다.

"이 얘는 『스즈키 아이』 랍니다."

그것은 현세의 부모님이 내게 지어준 이름.
다음 생에는 또 바뀔 속세의 이름.

"저기 할아버지, 잠깐 귀좀..."
"이런, 비밀 얘기라도 있는거냐? 그래 그래..."

그의 귀에 가만히 속삭인다.
100년전의 이름을.
나의 진짜 이름을.

"나의 이름은 『유키시로 시즈카』에요...『후지와라 신사크』군..."

그리고 그의 볼에 가만히 입맞춘다.
그는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멀어진다. 아스라히...

지금 헤어지면 이제 그를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100년후? 300년후?...
그때에는 내가 그를 기억 못할 지도 모른다.
아직 우리의 운명은 역사를 거스르지 못했다.

여전히,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요한설원 (2005-05-01 15:31:58)  
아마 1~2 달에 하나씩 계속 쓸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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